"그건 김 과장님한테 물어보세요." 거래처 단가도, 이상한 주문 처리도 다 그 사람 몫이고, 그 사람이 여름휴가를 사흘 가자 출고가 사흘 멈춘 회사. 시스템을 만들러 제조 현장을 수십 곳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이런 사람이 한 분씩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적으면 이렇습니다. 그 사람이 안 적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적을 수 없는 회사입니다. 규칙은 몇 장이면 적히지만 예외 뭉치는 적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 단추는 매뉴얼 쓰기가 아니라 예외를 줄이는 것입니다.
- 질문을 모아 예외 목록 만들기 — 그 사람 자리에 종이 한 장을 두고, 물으러 올 때마다 질문만 한 줄 적습니다.
- 예외마다 이유가 살아있나 따지기 — 주 1회 30분, 이유가 죽었으면 버리고 살아있으면 규칙으로 올립니다.
- 새 예외에는 기한 붙이기 — "이번 한 번만"에 기한을 같이 정해, 기한이 되면 규칙으로 올리든가 버립니다.

매뉴얼을 쓰라는 처방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
매뉴얼을 못 적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적을 규칙이 없어서입니다. 위의 그 공장도 사장님이 이미 손을 써 본 뒤였습니다. 업무 매뉴얼을 만들라고 했고 인수인계 양식도 새로 갖췄습니다. 담당자가 며칠을 씨름했지만 결국 못 적었습니다. 적으려고 앉아 보니 적을 규칙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담당자 옆에서 업무를 같이 뜯어보니 나오는 것이 전부 예외였습니다.
- 원래 납기는 닷새인데 이 거래처만 당일에 보낸다.
- 이 품목만 전산 숫자 말고 실물을 직접 확인한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답이 비슷합니다. 몇 년 전에 사고가 한 번 있었다는 것인데, 무슨 사고였는지는 본인도 가물가물합니다. 이유는 지워지고 처리법만 남은 상태입니다. 해외 사례도 다르지 않습니다. ERP 를 교체하던 한 회사는 주문이 하루씩 대기하는 이유를 캐 보니, 몇 년 전에 없어진 야간 배치 작업을 기다리던 지연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이렇게 하자"는 말이 몇 년 쌓이면 그것이 그 회사의 운영 방식이 됩니다. 규칙이라면 몇 장이면 적습니다. 그런데 예외 뭉치는 적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안 적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적을 수 없는 회사였던 것입니다.
1단계 — 질문을 모아 예외 목록을 만듭니다
첫 단추는 매뉴얼 쓰기가 아니라 그 사람 자리에 종이 한 장을 두는 것입니다. 누가 물어보러 올 때마다 질문만 한 줄 적습니다. 답은 평소처럼 말로 해 주면 됩니다.
아는 것을 다 적으라고 하면 막막해서 실패합니다. 물어본 것만 적는 것은 10초면 됩니다. 그 공장에서는 보름을 모으니 서른 줄이 넘게 나왔습니다.
이것이 곧 그 회사의 예외 목록입니다. 사람들이 물으러 오는 일이 곧 규칙에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단계 — 예외마다 이유가 살아있는지 따집니다
모은 목록을 놓고 한 줄씩 딱 하나만 묻습니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가 아직 살아있나?" 일주일에 한 번, 30분 회의면 충분합니다. 담당자와 관리자가 함께 앉습니다.
- 이유가 죽었으면 그 예외는 버립니다. 그날부터 원칙대로 처리합니다.
- 이유가 살아있으면 정식 규칙으로 올립니다. 어떤 경우에 어떻게 하는지 문장으로 적습니다.
- 이유는 죽었는데 거래처와 얽혀 못 버리는 것은 버리지 말고 규칙으로 올립니다.
이 세 갈래를 그림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 공장에서는 따져 보니 목록의 절반이 이유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몇 주 만에 예외가 눈에 띄게 줄었고, 그제야 적을 수 있는 회사가 됐습니다.
3단계 — 새 예외에 기한을 붙입니다
예외가 다시 쌓이지 않게 하려면 "이번 한 번만 이렇게 하자"는 말이 나올 때 기한을 같이 정합니다. "이 거래처만 이번 달까지 당일 출고" 같은 식입니다.
기한이 되면 2단계의 30분 회의에 다시 올립니다. 규칙으로 올리든가 버리든가, 둘 중 하나로 끝냅니다. 예외에 유통기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면 머릿속에만 있는 일이 더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매뉴얼이든 시스템이든 그다음에야 굴러갑니다. 그 공장은 다음 휴가 때 출고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머릿속도 있습니다
설비 소리만 듣고 고장 낌새를 잡아내는 감각 같은 것은 예외가 아니라 기술입니다. 종이에 적어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옆에 같이 서서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나
그 사람 자리에 종이 한 장을 둡니다. 누가 물으러 올 때마다 질문만 한 줄 적어 달라고 합니다. 보름 뒤에는 우리 회사의 예외 목록이 손에 들려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