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시키면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시대입니다. 우리 공장 일은 우리가 제일 잘 아니, 직접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답부터 적으면, 공장 일을 아는 것과 시스템이 들어온 뒤의 공장을 아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들다 접는 공장은 공장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들어오면 지금 하던 순서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질문이 새로 생기는지를 만들기 전에는 알 수 없어서 접습니다. 이 글은 저희가 한 번 엎어진 뒤에 불려 갔던 자동차 부품 공장의 이야기입니다.
종이로 되던 순서가 시스템에서는 그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시스템이 들어오면 입고 검수의 순서부터 달라집니다. 그 공장의 원래 순서는 이랬습니다.
- 물건이 오면 검수한다.
- 합격하면 창고에 넣는다.
- 종이에 적어 두었다가 다음 날 사무실에서 입력한다.
여기까지는 저희보다 현장 분들이 훨씬 잘 압니다. 그런데 시스템에서는 검수 결과를 그 자리에서 찍어야 합니다. 찍는 순간 재고가 잡히고, 생산 화면에 그 재고가 바로 보입니다. 이때 전에 없던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 검수가 안 끝난 물건이 생산 화면에 떠 있고, 생산은 그것을 쓰는 걸로 계획을 잡습니다. 종이로 할 때는 안 보였으니 없던 일입니다. 검수 입력에서 생산 계획까지 한 줄로 이어지는 모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검수 안 끝난 물건 하나가 만드는 질문들
검수 안 끝난 물건을 어떻게 보이게 할지 정하는 순간, 회계·반품·부분 불량·긴급 출고의 질문이 줄줄이 따라옵니다.
- 검수 안 끝난 것을 안 보이게 하면, 물건이 없어져도 모릅니다.
- 그래서 보이기는 하되 못 쓰게 나눠 두면, 생산에서 "있는데 왜 못 쓰냐"고 합니다.
- 월말이 되면 회계가 묻습니다. 검수 안 끝난 물건도 자산으로 잡는지.
- 불합격 난 것은 반품해야 하는데 업체가 두 달째 안 가져갑니다. 그 물건은 지금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 열 개 중 세 개만 불량이면, 그 세 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 검수 안 끝났는데 생산이 급하다고 가져가면, 그것은 어디에 남기는지.
이런 일들은 현장이 안 겪어 본 것이 아닙니다. 종이에 메모 한 줄 적고 넘어가던 것들이라, 만들 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쪽을 고치면 다른 쪽이 깨진다
터질 때마다 AI에게 하나씩 시키면 앞을 고칠 때 뒤가 막히고, 뒤를 고칠 때 앞이 막힙니다. 그 공장도 그렇게 했습니다.
- 처음 몇 개는 빠르게 잘 나옵니다.
- 며칠 뒤 생산에서 급하다고, 검수 안 끝난 것을 먼저 가져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되게 해 달라고 시킵니다.
- AI에게는 방금 시킨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앞에서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뒤로 밀립니다.
- 그래서 아까 나눠 둔 재고 구분을 건드리고, 회계 쪽이 깨집니다.
- 회계를 맞추면 반품 물건이 사라지고, 그것을 살리면 검수 안 끝난 물건이 다시 생산에 보입니다.
재고 구분에서 시작해 생산 화면까지 돌아 다시 재고 구분으로 오는 이 순환을 그림으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 공장 담당자도 여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끝이 없다고요.
접는 쪽이 그나마 낫다
접으면 몇 달 날린 것으로 끝납니다. 못 접고 계속 가는 쪽이 더 안 좋습니다.
- 그때는 이미 그 프로그램으로 일하고 있고, 데이터도 쌓여 있습니다.
- 고치는 동안 규칙이 계속 바뀌었으니, 어느 데이터가 맞게 들어간 것인지 모릅니다. 종이는 다시 들춰보기라도 합니다.
- 그 상태에서 갈아엎으면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비쌉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쓰자니 맞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화면은 켜 두고, 실제 일은 종이로 돌아갑니다. 저희가 그 공장에 간 것이 그때였습니다.
상황을 더 자세히 알려 줘도 부족한 이유
AI에게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해도 부족한 이유는, 갈래가 여럿일 때 무엇을 포기할지는 설명이 아니라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급할 때 검수 안 끝난 것을 가져가는 일 하나만 해도 방법이 여러 갈래입니다.
- 가져가기 전에 허락을 받게 한다.
- 일단 가져가고 나중에 적게 한다.
- 이 둘 말고도 더 있다.
전부 맞는 방법이고, 어느 공장이냐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싸움이 납니다. 현장은 일단 가져가게 해 달라고 하고, 사무실은 그러면 재고가 안 맞는다고 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라 결론이 안 나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정해야 끝납니다.
자재값이 얼마인지, 라인이 한 번 멈추면 얼마가 나가는지, 급한 날이 한 달에 몇 번인지는 현장이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올려놓고 어느 쪽이 나은지 고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넣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까지 본 사람이라야 포기는 적게 하고 얻는 것은 크게 가는 쪽을 고릅니다. 한 군데만 보고는 비교할 것이 없어 고르기 어렵습니다.
AI도 그중 하나는 내놓고 이유도 그럴듯하게 붙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장 사정은 하나도 안 보고 붙인 이유입니다. 그것이 우리 공장의 답이 아니면 거기서부터 다시 고치고, 고치면 위의 연쇄가 또 돕니다. 그래서 저희는 개발보다 운영을 먼저 봅니다. 시스템이 들어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부터 그립니다.
그래도 AI에게 시켜도 되는 경우
위의 질문들을 스스로 다 짚어내고 결정할 수 있다면, AI에게 시켜서 만들어도 됩니다. AI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희도 그렇게 만듭니다.
오늘 해볼 것 하나
시스템이 들어온 뒤의 공장은 넣어보기 전에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들기 전에 종이 한 장으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 만들고 싶은 것을 하나 정합니다.
- 그것이 들어오면 지금 하던 일 중 무엇이 바뀌는지 적습니다.
- 그것 때문에 새로 생기는 질문을 적습니다.
질문이 아예 안 떠오르거나, 떠올라도 답이 안 나오면 혼자 시작할 자리가 아닙니다.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